사형 제도에 대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던지는 질문 - 공허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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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특별보급판)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자음과모음 |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을 하는 작가다. 다작이라지만 어느 한 편 가볍거나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화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백야행>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다.
<방황하는 칼날, 출처: 네이버 무비>
개인적 경험에 한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을 읽은 후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이나 허무함 같은 여운이 남을 때가 많다. <비밀>, <백야행>, <몽환화>, <용의자 X의 헌신>, <마구>, <편지> 등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수차례 그래왔던 것 같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인 만큼 밀실 배경 살인, 명탐정의 활약, 형사의 직감에 의한 사건은 물론 엔지니어의 경험을 살린 과학적 소재들로 재미난 이야기를 쓰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등장인물의 입장 - 형사, 범인, 피해자, 그리고 범인이나 피해자 그 가족 -에서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공허한 십자가> 역시도 마지막 장에 이르러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드는 그런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앞서 <편지>에서는 '범죄자의 가족이 겪는 사회적 비난’을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감형’과 같은 민감한 소재를 자신의 소설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공허한 십자가>에서는 ‘사형제’와 나아가 '법을 통한 범죄자의 심판이 과연 효과적인가?’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인공 나카하라와 그의 부인 사요코는 10여 년 전 강도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고 결혼 생활은 이혼으로 파탄 난다.
범인(하루카와)은 과거 살인 사건으로 무기형 받고 살다 감형으로 출소한 전과자로 나카하라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려다 그의 딸을 살해한다. 체포된 범인은 법정에서 ‘살인'이 고의가 아니라 ‘우발적’이었음을 주장하고,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이 사건을 통해 사형제도의 필요에 대한 확신과 함께 법을 통한 심판이 주는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딸의 사건 후 10년. 아내 사요코와 이혼하여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던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며 다시 한 번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경찰의 수사 결과 범인은 강도 전과자. 게다가 단순 강도 사건을 저지르려다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자수한 상태로 감형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사요코의 어머니는 나카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죽음을 추적해나가다 어쩔 수 없이 ‘영아’를 살해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연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사형제’와 ‘법의 심판’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다. 나카하라 부부는 딸을 잃고 난 뒤,
딸을 살해한 살인범이 ‘과거 범죄에서 무기형이 아니라 사형을 당했더라면 딸을 잃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범인이 꼭 사형 받길 원한다. 하지만 사형 판결이 어떤 것도 바꾸어 놓진 못했다.
"하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하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합니다."
범인은 사형을 받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딸은 되살아 나지못하고, 결국 범인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통해 법이라는 틀 안에서 '범죄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가?’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한다.
<사형제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영화, 데드 맨 워킹>
우리가 범죄자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죄를 반성할 기회를 주고, 사회에 돌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실제로 많은 범죄자가 출소 후 다시 유사 범죄를 일으킨다. 이 경우 과연 법이 내리는 형벌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교도소에서 일뤄지는 법의 심판은 범죄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게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어떤 경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우발적’ 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정상참작을 받는 한편 순조로운 교도소 생활로 감형받아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일찍 출소한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평생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산다.
‘교도소에서 교화된 척하며 시간을 보내다 출소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죄를 숨긴 채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중 누가 더 크게 죄값을 치른 것인가?’, ’살인 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이유에 따라 정상을 참작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과연 그럴만한 이유란 게 있는 것인가?'
소설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른다. 만약 범죄자들이 교도소 생활을 죗값을 치르고 반성을 위한 기회로 삼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지워진 형벌은 소설의 제목처럼 <공허한 십자가>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 어디에서도 ‘사형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결론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모든 각각의 범죄를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누구도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확실하다. 범죄자가 받는 형벌이 <공허한 십자가>가 되지 않도록,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그들의 진정한 반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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