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식 에도시대 천일야화 - 피리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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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술사 -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
미야베 미유키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봄 [퍼펙트 블루]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에 푹 빠져있던 참이었는데,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동료가 '추리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미야베 미유키도 좋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 일로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는데,
영화로 널리 알려진 [화차]의 원작자라고 하여 기대감에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퍼펙트 블루는 미야베 미유키의 첫 장편소설로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동시기에 '야구'를 소재로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를 무척 재미있게 읽는 바람에
미야베 미유키의 그 소설은 내게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이후 올해 초 중고서점에서 [피리술사]를 발견한 것이 두 번째 만남이다.
중고서점의 일본 소설 코너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책 표지의 일러스트와 중고책 답지 않은 깨끗함에 몇 번이나 이 책을 집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표지가 일본 판화 같은 느낌이다.)
<좌: 피리술사 표지 / 우: 에도시대를 그린 판화>
깨끗한 만큼이나 중고책 답지 않게 비싼 가격과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에 조금 주저했지만
표지의 일러스트가 맘에 드는 데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를 추천해준 이유가 있겠지'라는
나름의 핑계로 결국 이 책을 충동 구매하게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이나 다작을 하는 작가로 그녀의 소설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들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피리술사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배경이 되는 에도시대가 낯설어 결국 첫 챕터를 읽고,
'흥미롭긴 하지만 읽기 너무 어렵다'라고 결론을 내고 책장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두 번째로 이 책을 폈을 때는 46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 책 4권을 추가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에도시대(1600년대 초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로 에도(지금의 도쿄)의 한 주머니가게가 배경이다.
미시마야의 주인 이헤에에게는 오치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그녀는 17살의 나이에 약혼자를 잃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에도의 숙부 집에 와 지낸다.
숙부 이헤에는 이런 조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묘안으로 조카 오치카를 통해 세상의 기이한 이야기를 모으는데,
신기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을 통해 오치카 스스로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미시마야의 주인 이헤헤가 손님을 불러 바둑을 두던 <흑백의 방>이라는 방에
종종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와 오치카에게 자신이 겪은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털어 놓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피리술사]는 책 전권을 아우르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치카'가
각각의 에피소드 주인공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구성이 '천일야화'를 떠올리게 한다.
천일야화에서는 세헤라자데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매일 밤 왕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 책에서는 오치카가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사람들의 괴담(신기한 이야기)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어린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는 것처럼 흥분되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다음 에피소드는 어떤 이야기일까'하고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을 구매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오치카가 등장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시리즈는
[흑백], [안주], [피리술사] 3권이 출간되었으며, [피리술사]는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늦은 밤 스탠드에 의지해 혼자 읽다 보면 조금 으스스할 것 같은 이야기들도 있어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밤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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