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버린의 은퇴식, <로건>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고등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때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비목'이라는 가곡을 배운적이 있었다. 작사가가 군 생활을 하며, 6.25 전쟁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보고 작사했다는 이 곡은 쓸쓸하고 처연해 부를 때마다 비감이 느껴졌는데, 로건을 보고 난 느낌이 딱 그랬다.
20세기 폭스의 프랜차이즈 히어로물인 엑스맨은 2000년 첫 시리즈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엑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성격의 3부작이 나오며 울버린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지만, 2009년 <엑스맨:울버린의 탄생>부터 울버린 스핀오프가 따로 이어지며 2017년에 이르렀다. 휴잭맨이 울버린으로 분한지도 벌써 17년이나 된 것이다.
영화 <로건>은 17년의 세월 속에 늙어버린 휴잭맨처럼 늙어버린 울버린이 등장한다. 뮤턴트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뮤턴트들이 태어나지 않는 2029년. 울버린은 리무진 기사로 생활하며 치매에 걸린 찰스 자비에 박사를 보살핀다. 그의 몸은 더 이상 총알을 막지 못하고, 다리를 절며, 돋보기가 없이는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병기에서 한낱 인간의 모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울버린'이 아니라 '로건'이라고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세월 속에 늙어버린 울버린도 나와 친구들도 모두 다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서 '비목'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마치 한 시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은퇴 경기의 같았던 이 영화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은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엑스맨(2000년 작)에서의 울버린/출처:네이버 영화
로건에서의 울버린/출처:네이버 영화
해리슨 포드가 스타워즈에서 1977년부터 '한솔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를 제외하면, 영화사에서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이렇게 오랜 시간 연기한적이 있었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휴잭맨이 아닌 울버린은 상상하기 힘들다. <로건>은 이런 휴잭맨의 울버린 시대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아마도 스파이더맨이나 베트맨처럼 리부트되어 또 다른 울버린을 만날 수 있겠지만 휴잭맨의 울버린은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니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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