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의 시작, <영웅본색>
요즘 ‘홍콩영화’라고 하면 딱히 연상되는 이미지가 없다. 사실 요즘 홍콩에서 영화를 만드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도리어 대만영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80~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홍콩영화가 주는 의미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나와 친구들은 명절이면 찾아오는 성룡의 영화를 보며 웃었고, 장국영의 사슴 같은 눈망울과 양조위의 우수에 젖은 눈을 닮고 싶어 했으며, 어른이 되면 주윤발다움을 갖춘 남자가 되어 ’천년유혼’의 왕조현 같은 애인을 만나게 될 날을 꿈꿨다. 그 시절의 홍콩영화에는 스타가 즐비했다. 4대 천왕이라 유덕화, 곽부성, 장학우, 여명에 이연걸, 임청하, 주성치, 장만옥, 매염방, 오천련, 관지림, 왕정문(왕비)의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성룡식 개그+액션, 무협 영화, 주성치식 코미디, 그리고 누아르.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누아르였다. 홍콩 누아르의 시작은 다가오는 세기말과 홍콩의 반환을 앞둔 암울한 당시 홍콩의 분위기 탓을 반영한 것으로 <영웅본색>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홍콩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불리는 서극이 제작하고, 오우삼이 감독한 <영웅본색>은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 형제애를 그리며 큰 인기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주윤발과 장국영은 대스타가 되었다.
조직의 부두목 정도의 위치에 오른 송자호(적룡)와 송아걸(장국영)은 형제애가 돈독한 사이다. 송자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직생활을 하며 위조지폐를 만드는 일에 가담하고 있지만, 경찰이 된 동생을 위해서 조직의 생활을 청산하고자 마지막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계략에 걸린 송자호는 대만에서 경찰에 붙잡히게 되고, 경찰로서 성공하고자 했던 송아걸은 조폭 경력의 형 때문에 출셋길에서 멀어지게 되며 형을 원망한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장국영 / 출처: 네이버 영화
한편, 송자호와 같은 조직에서 몸담고 있으며 의형제처럼 지내는 마크(주윤발)은 송자호의 복수를 위해 적들을 처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장애를 안게 되고, 조직의 후배였던 아성에게 굴욕적이 수모를 당하며 송자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수년 만에 출소한 송자호는 동생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게 손을 씻으려 하지만 아성과 조직은 그에게 계속 함께할 것을 권유하며, 송자호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동생을 위험에 빠뜨리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결국 송자호는 복수를 계획해 동생 송아걸에게는 위조지폐 데이터 테이프를 전달하고, 마크를 밀항시키는 한편 자신이 미끼가 되어 아성을 유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뒤늦게 달려온 송아걸과 떠나려고 했다 돌아온 마크가 함께 아성과 맞서 싸우며 의리와 형제애를 보여준다.
주윤발, 적룡, 장국영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성공은 이후 홍콩영화에 한동안 누아르 붐을 일으키며 유사한 스타일의 영화를 유행시켰고, 트렌치코트와 선글라스,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윤발은 홍콩영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라이터가 없지 않았을텐데... / 출처:네이버 영화
30년도 훨씬 지나 오글거리고 유치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형제애나 의리’가 유치하지 않다. 동생의 앞길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형이나 조직의 동료를 위해 목숨 걸어 복수하고(설령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도망칠 기회를 포기하고 돌아와 함께 싸우는 모습은 그 시절 수많은 이를 울렸고, 누군가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영웅본색>으로 시작된 홍콩 누아르는 <무간도>를 이후로 명맥이 끊긴 것 같다.(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존재감이 없으니). 홍콩영화 자체도 홍콩반환과 함께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는데, 그 시절을 추억의 영화와 배우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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