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스기무라 사부로. 미야베 미유키 <음의 방정식>
음의 방정식 -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문학동네 |
추리소설의 세계에서 대부분의 작가가 대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푸와로(포와로),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팡.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가까이에 히가시노 게이고만 해도 ‘가가 형사’와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있고, 혼다 테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도 익숙하다.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하면 딱히 떠오르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전 작품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 23편을 읽은 지금의 시점(읽다 포기한 이코-안개의 성 포함 24편)에서 중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에도 시리즈 ‘미인’에 등장하는 ‘오하쓰’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영화/TV 시리즈에서 가가 형사 역할을 맡은 아베 히로시>
오하쓰와 스기무라 사부로는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나 갈릴레오 ‘유카와 마나부 교수’와 비교하면 존재감이 너무 낮다. 그런 점에서 <음의 방정식>을 통해 다시 만난 스기무라 사부로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물론 작중 어디에도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의 ‘스기무라 사부로’와 완벽히 동일인물로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혼남이며 딸이 있다는 설정만으로도 그 ‘스기무 사부로’일 수밖에 없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마지막>에서 이혼과 함께 장인의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본격적으로 탐정이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장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홍보팀의 사보 편찬 직원이었다.)
사건은 어느 중학교의 재난 대피 체험 캠프에서 시작된다. 재난 상황 발생 시 학교로 대피해 숙영하는 것을 가정해 진행되는 이 캠프에서 학생 한 명이 이탈하고, 함께 참여한 모두가 그 원인이 담당 교사 때문이라고 하면서 문제가 불거진다. 그 과정을 한 학생의 아버지에게 수사 의뢰받은 스기무라 사부로와 담당 교사의 변호인 후지노 료코가 조우해 함께 조사하며 원인을 밝혀낸다.
본래 이 소설은 일본에서 <솔로몬의 위증> 문고판이 출판될 적에 새로 써 부록처럼 덧붙인 작품이라고 한다. <솔로몬의 위증>에서 2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후지노 료코’ 가 성장해 변호사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종의 팬서비스인 것이다. 픽사 영화에 포함되는 단편 같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치밀한 설정과 디테일한 묘사는 없다.
후지노 료코가 성장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쓴 소설이지만, 주인공은 스기무라 사부로이고 사건의 해결 역시 그를 통해 이뤄진다. 이 같은 설정으로 보았을 때 역시 부담 없는 분량의 단편을 통해 스기무라 사부로를 본격 탐정으로 데뷔시키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후속작을 위한 연결 고리를 의도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분량이 아쉽지만, 한편 반갑다. 앞으로 나올 스기무라 사부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기대된다. ‘후지노 료코’와 콤비를 이루는 작품도 좋고.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대표 캐릭터로 만들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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