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어둠 속을 걷는다 - 백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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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수도 있어요!!)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라면 어떤 작가든 그를 대표할만한 작품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대표작을 꼽는 데 있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내 경우 하루키라면 [노르웨이 숲], 파울로 코엘류라면 [연금술사],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면 [개미] 같은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의 인기로 봤을 때 다른 이들은 <나미야 잡화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하면 자연스레 <백야행>이 떠오른다. 나는 이미 백야행을 읽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드라마로 먼저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원작보다 뛰어난 드라마는 많지 않기 때문에 강렬한 드라마의 인상만으로도 '원작은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50편이 넘도록 읽는 중에도 최대한 드라마의 기억이 잊혀진 뒤 읽기 위해 이 작품을 아껴두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백야행>
오사카 형사부 소속의 사사가키 쥰죠는 관할 지역의 공사장에서 벌어진 전당포 주인 '기리하라'의 살인에 관한 사건을 맡게 된다. 치정과 강도살인, 원한 등 다양한 동기가 검토되고, 남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가라사와 후미요가 용의자로 특정되지만 범죄의 증거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 채 후미요의 죽음으로 미제 사건이 되어 버린다.한편 사건의 배경에 의문을 갖던 쥰죠 형사는 시간이 흘러 우연히 한 강간 사건에서 후미요의 외동딸 '유키호'와 기리사라의 아들 '료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전당포 주인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들의 뒤를 20년간 쫓는다.
<한국에서는 손예진과 고수가 '유키호'와 '료지' 역을 연기하고, 한석규가 '사사가키' 형사를 연기했다.>
이 작품은 아주 긴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 일본의 70~80년대를 배경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잘 녹여내고 있다. 당시 막 태동하고 있었던 컴퓨터 기술과 이를 사용한 범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그의 장기로 '과학' 또는 '기술'이 접목된 범죄의 트릭을 접할 때마다 그의 해박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주인공 '료지'가 생계를 위해 그리고 '유키호'를 위해 벌이는 범죄로 '카드 복제', '송금 사기', '해킹', '게임 복제'와 함께 막 싹트기 시작한 저작권 문제, 주가와 부동산 상승의 버블경제 시대 등 당시 사회상을 아주 잘 반영해 재미를 배가시킨다.
소설의 제목인 백야행( 白夜行)은 '하얀 어둠 속을 걷는다'라는 뜻으로 최초의 살인 사건 이후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유키호와 료지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지만, 결국 유키호 쪽에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유키호가 자신이 처한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남을 기만하고 범죄를 계획해 왔다면, 료지는 이를 실행하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유키호를 위한, 유키호에 의한, 유키호의 삶'으로 살아간다. 어린 시절 가난과 불행, 충격적 경험들을 겪었던 유키호는 료지의 도움으로 점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지만, 조금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료지는 점점 어둠의 세상 속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키호는 어둠이라도 밝은 어둠 속을 걸을 수 있지만, 료지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특유의 먹먹함도 느낄 수 있는데, 유키호와 료지의 비극적이고 슬픔 삶이 전해져 마음이 아프다. '처음 사건이 벌어졌을 때 범인이 잡혔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문절망둥이와 대포새우'의 묘사 역시 흥미로운데 '악어와 악어새 정도의 공생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둘의 상황에 딱 떨어져 맞는다.
<백야행>을 보았을 때쯤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유성의 인연>을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기억이 잊혀지길 기다리며, 읽는 것을 참아왔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으로 <유성의 연인>에 도전해 봐야겠다.
<드라마 '유성의 인연'도 재미있다.>
백야행 1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태동출판사 |
백야행 2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
백야행 3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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