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은 없다 -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어느 날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면 삶이 어떻게 변할까?
꽤 즐거운 상상이지만, 막상 그 일이 현실로 닥치면 마음 한구석 걱정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큰돈을 남긴 것일까?' 또 미디어에 그 사실이 노출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귀찮은 일투성이다. 신문기사에서 접하는 로또 1등 당첨자 사례처럼 각종 단체로부터 기부 요청을 받는다든지, 평소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나 친지들로부터 연락이 온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어쩌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잠들 수 없을 것만 같다! ^^;; 그런 요행이 일어난다면, 어떤식으로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마사오는 언뜻 보기에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이다. 그런 마사오의 엄마 사코토에게 어느 날 변호사가 찾아와 5억 엔의 유산 상속을 알린다. 요즘의 환율로 50억쯤. 유산을 남긴 사람은 '사와무라'라는 의문의 남자.
'사와무라'는 '사코토'가 20여 년 전 잠깐 도움을 준 사람으로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전 재산을 남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의심. 아주 오래전 잠깐 도와줬다는 이유만으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50억을 유산으로 남길 수 있을까?
미디어도 이웃들도 직장동료도 친지들도 믿지 않는다. '분명 사와무라와 사코토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불신. 이제 가족들도 서로 믿지 못하며, 엇나가기 시작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마사오가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대개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심각한 '사건' - 보통의 경우 살인-이나 용의주도한 범인의 뒤를 파헤쳐 나가는 탐정 또는 형사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 역시 과거 막연히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추리소설이 반드시 무겁고 진지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짐이 무거운데 기분을 전환하거나 재미를 느끼자고 읽는 책마저도 늘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다면,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어느새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가벼운 독서도 필요하다. 말랑말랑 명랑소설 같은 추리소설 말이다. 어쩌면 미야베 미유키도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미스테리 소설 작가로 그녀 앞에 항상 붙는 수식어 '사회파'로 대변되는 작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작품에서 그녀는 무거운 주제와 사회비판으로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그녀 스스로를 얼마나 무거운 분위기로 몰아갔을까? 분명한 것은 <화차>같은 작품을 쓰는 동안 분명 마음이 가볍고 경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화 화차 - 포스터만 봐도 무겁다>
그런 사회파 소설 창작에 비하면,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같은 가벼운 소설은 작가 스스로 기분 전환이 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종종 그녀의 소설에서 조금씩 보이는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도 있었을 테고. 따라서 그녀의 대표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호감도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 몇몇 댓글에서 이미 그런 모습이 발견된다.
다행이 나는 미야베 미유키를 에도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진지한 현대물을 접하지 않은 상황이다. 덕분에 이 책이나 <스텝 파더 스텝>, <나는 지갑이다> 같은 가벼운 책들을 읽으며 전혀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다. 천만다행이다. 내 경우엔 진지한 미미여사도 가벼운 미미여사도 모두 충분히 즐겁다.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황매(푸른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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