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언젠가 친구와 술자리에서 환생을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다음 생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친구의 물음에 '고양이'라 대답했다. 그것도 길고양이. 왜 하필 고양이었는지는 지금에 와선 생각나지 않지만,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결국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대로 고달픔이 있겠지?"라고 결론짓고 웃어넘겼다.
<출처: 플리커 - https://flic.kr/p/rpHZL4>
'만약 내가 다음 생을 또 산다면, 고양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샀던 것 같다. 책 모서리에 찍힌 도장을 확인하니 2011년. 그 사이 4년이나 흘렀지만 완독을 마친 것은 겨우 지난 추석 연휴다.
구매 당시 재미있는 소설이라 생각했지만, 반쯤 읽고 난 뒤 이런저런 이유로 흐름을 놓치는 바람에 포기했다. 이번에도 후반부가 다소 힘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다소 늘어진다. 아마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잡지 연재가 인기를 끌며 회를 더할수록 작가에게 부담되어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쳐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름도 없고, 출생도 불분명한 고양이 '나'는 길거리를 헤맨다. 그리고 우연히 흘러들어 간흘러 들어간 중학교 영어 교사 구샤미 선생 집에 얹혀산다. 구샤미 선생은 다소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스스로 지식인인체하는 인간이며 실업가를 혐오한다. 구샤미는 실업가를 '돈벌레' 정도 생각하는데, 마치 자신이 스스로 실업가만큼 능력을 갖지 못한 것에 반발심으로 그들을 무시하는 듯해 조금 안쓰럽기까지 하다.
흥미로운 건 주인공 고양이 '나' 역시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것이 꼭 제 주인과 똑 같다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인 주제에 사사건건 구샤미 집사람들과집 사람들과 그 친구들의 부족한 면을 보며 조소하는 모습을 읽다 보면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이 이 소설의 재미다.
구샤미는 한가할 때면 대개 방에 들어 앉아 책을 끌어안고 잠들거나 손님과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는 거짓말로 사람을 희롱하는 친구 메이테이나 "목매달기의 역학"같은 쓸데없는 연구를 하는 간게쓰 같은 실속 없는 사람들이나 속물적인 실업가들뿐이다. 특히 메이테이와 간게쓰는 소위 지식인으로 구샤미와 함께 철학과 문학, 사회 등 세상사를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만 대개 시대에 맞지 않거나 현실감각 없는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겨우 고양이에게 비웃음 사고 만다.
작가는 고양이의 입을 빌려 막 산업시대로 들어선 당시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행태와 함께 실업가의 속물성을 꼬집는다.
고양이 '나'는 요즘으로 치면 '시니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작품 내내 냉소와 조소가 철철 넘친다. 읽다 보니 고양이의 말투에서 <빌브라이슨의 유럽산책>이 떠올랐다. (빌브라이슨 역시 몹시 시니컬하다.) 사람을 주인으로 보지 않고, 자기보다 아래로 생각한다는 고양이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읽는 중간 피식피식 웃음이 나거나 깔깔 거리게 만든다. 인간 가까이에서 인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에는 역시 개보다는 고양이의 시선이 적합한 것 같다.
러일전쟁 전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00년의 시차를 넘어 요즘 소설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시대에 맞게 잘 번역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잘난 척하는 지식인과 속물적인 사람들이 넘쳐나서일테고, 작가가 그들의 속성을 너무나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며,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평가 받을만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49살에 병사한 것인데, 더 오래 살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사건건 인간사를 간섭하던 '나'는 결국 술독에 빠져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인력거 집인력거집 고양이로 살았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신경 쓰더니 죽는 것까지 평범한 고양이와 다르다. 왠지 고양이로 살면 편할 것 같아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괴팍스러운 구샤미집 고양이라면 고양이로 사는 것도 나름대로 애로사항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1984 ~ 2004년까지 1000엔 지페의 모델이었던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진영화 옮김/책만드는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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