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카페 - 지관 서가 그린하우스
6월은 한 여름과 비교하면 무덥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녹음이 우거져 공원에 가기 좋은 계절인 것 같다. 더 뜨거워지기 전에 시간을 내 울산 대공원 안에 생긴 북카페 지관에 다녀왔다. 북카페 지관은 한자 그칠 지(止) 볼 관(觀)으로 대략 '그치고 바라본다'라는 뜻 정도 되는 불교 용어라고 한다.
나는 종교는 문외한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번뇌나 욕망이나 욕심이나 질투 등 안 좋은 마음을 그치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북카페 지관을 만든 이들도 아마 그런 걸 의도하고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복잡다난한 일상으로 마음속이 시끄러운 사람들 그저 잠깐 여기 들러 차 한잔 마시고, 책 한 번 펴보면서 잠깐 멈추고, 생각하고, 돌아보라고..
지관 그린하우스가 있는 울산대공원은 SK그룹이 시민들을 위해 만든 공원으로 그린하우스는 세미나 및 워크숍 등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공원 한가운데 있는 시설로 세미나 등을 하기에는 사용성이 떨어졌는데 마침 이곳을 SK 계열사 중 한 곳인 SK어드밴스드가 비용을 들여 북카페 지관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쉼터 가운데에 멋진 북카페를 기업이 무료로 만들어 주었으니 울산에 사는 사람들은 운이 좋다.(나는 울산에 살지 않는다.)
내부에는 지관을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우리 시대 시민들이 읽어 봄직한 책들이 놓여있다. 다만, 읽으라고 갖다 놓은 책들일텐데 일부 책들이 마치 전시해 놓은 책들처럼 놓여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인 책들은 편하게 읽기 위해 만든 북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인테리어 같았다.
동화책들도 어린이의 눈높이에는 닿지 않았다.
북카페인만큼 커피도 팔고 있었는데 커피는 마셔보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여유 한모금을 선사하고, 수익의 일부를 지역 사회에 공헌한다고 하는데 한 잔 팔아주고 올 걸.. 딴짓을 좀 하느라 커피도 못 마셨다.
지관 그린하우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키오스크였는데 성별, 연령, 즐겨 읽는 장르 등을 고르면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주는 기능이 있었다. 나는 <세 개의 잔>이라는 추리소설을 추천받았는데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은 경험이 많지 않은데 나중에라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왕돋보기도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테이블에는 무선 충전이 가능한 충전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테이블이나 의자, 조명 등의 시설은 최고였다. 굳이 서가에 놓인 책들이 아니더라도 대공원 산책 나가면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중간에 지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읽다 가도 좋을 것 같다.
모처럼 북카페에 간 김에 뭐라도 하나 펴보고자 표지가 눈에 띄는 잡지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표지에 쓰여 있는 <세상과 거리 두고 나로 살아가기>라는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미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SNS와 유튜브, 틱톡으로 세상과의 거리는 더 좁아진 느낌이다.
메일함에는 뉴스레터가 쏟아져 들어오고, 포털 메인에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들이 눈길을 끈다. 페이스북는 자기주장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는 일상을 과시하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뻔히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꼭 클릭하고,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포털 뉴스 사이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을 휴대폰에서 차단해 버렸다. 또,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 대신 자신을 위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라는 내용이나 일상에서 경외심을 느껴보자는 꼭지 역시 인상 깊었는데 이게 바로 '지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관 방문은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대공원을 찬찬히 둘러봤을텐데 그런 부분은 아쉬웠다. 지관은 앞으로도 울산 안에 몇 곳이 더 생긴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러 곳에 생기면 시민들의 접근에 더 좋을 것 같다. 지관 2호점은 장생포 문화창고 안에 생긴다고 하는데 여기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울산 사는 분들은 많이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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