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사키 마이가 잠자코 있지 않아
도쿄제일은행을 배경으로 정의감에 넘치는 '하나사키 마이'가 조직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며 조직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순전히 은행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은행의 업무와 관련된 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러브라인 따위는 1도 없다.
언젠가 <노동기준감독과 단다린>을 보고서도 느낀 것이지만, 용케 일본 드라마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도 에피소드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라면 은행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라면 100% 은행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일 텐데. 아니 애초에 은행은 드라마 주인공의 직장으로 등장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시중의 은행들은 모두 오너가 없기 때문에 오너의 아들(이사, 실장, 팀장)과 연애해야 하는 일반적인 드라마가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은행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가 꽤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재벌 2세는 나오지만, 이 또한 부조리의 대상이다
드라마 속 도쿄제일은행은 도쿄 내 3대 대형 은행 중 하나로 주인공 하나사키 마이는 지점 텔레에서 발탁되어 본점의 임점반으로 배속된다. 임점반은 은행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실수와 사고를 조사하는 부서로 은행 내에서 한직으로 취급받고, 출셋길과는 거리가 먼 보직이다. 즉,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고인 부서다. 하나사키 마이와 그녀의 상사 소마 켄은 이곳에서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고, 그것들을 해결하며 조직의 적폐와 싸워나간다.
도쿄제일은행 임점반. 하나사키 마이와 소마 켄
시즌 1/2가 총 21개 에피소드로 되어 있어 은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사건, 사고를 모두 접해 볼 수 있다. 텔러가 고객과 짜고 돈을 횡령해 건넨다든지, 불륜녀가 악의를 품고 영업직원의 가방에서 어음을 훔친다든지, 지점장이 아래 직원에게 손실의 책임을 떠넘긴다든지, 여직원이 스토킹을 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한다든지, 은행 직원을 노린 테러나 지점을 노린 테러가 발생한다든지, 금융청 공무원과 싸우거나 감사과 직원이 돈 받고 감사를 무마해주는 등의 아주 역동적인 사건 사고가 등장한다. 물론 배경이 일본이고, 드라마이다 보니 과장된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왠지 이 드라마를 보니 우리나라의 어느 은행에서도 직원끼리 불륜을 저지르거나 정산이 안 맞아 남아서 추가 근무한다거나 대출해준 사업체가 망해서 곤란함을 겪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매회 사건을 해결하며 하나사키 마이가 자신보다 직급이 높거나 갑의 지위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날리는 직언을 통해 매회 교훈을 남기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답다. 또 사사건건 하나사키 마이와 맞서며 조직을 썩게 만드는 부조리의 상징이자 적폐의 대상처럼 그려지는 신도 타케시 상무가 알고 보면 가장 은행을 아끼고, 조직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반전 또한 흥미롭다. 극중에서 마이의 아버지가 식당을 운영하고, 마이의 상사 소마가 미식가로 설정되어 있어 먹방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고, 보는 내내 각종 일본 요리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재미의 포인트다. 만화 같은 드라마지만 사실은 소설이 원작으로 '한자와 나오키'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한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신도 타케시 상무.
이렇게 매회 뭔가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