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가 뇌사에 대해 던지는 질문
히가시노 게이고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미 90권에 가까운 책을 써냈고, 수년 째 한 해 몇 편씩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재주가 있다. 탐정과 경찰들의 추리가 돋보이는 이야기는 물론 명랑 소설, 연애 소설, 블랙 코미디, 동화, 판타지,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까지 두루두루 만들 줄 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종류의 스토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슴 먹먹해지는 스토리다. 사건의 이면에 얽힌 사연과 등장인물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씩 밝혀질 때 왠지 모르게 거기에 공감하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는 엄청난 몰입감으로 스토리에 집중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스토리를 주로 현실의 사회 문제와 엮어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소년 범죄자의 처벌을 다룬 <방황하는 칼날>, 사형제를 다룬 <공허한 십자가>가 그렇다.
<인어가 잠든 집>은 뇌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가슴 먹먹한 스토리를 그려낸다. 이 소설은 뇌사와 장기기증에 관한 그 제도와 사회적 인식, 문제점 등 다양한 고민을 작중 인물들을 통해 짚어내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떠올리도록 한다.
인간의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기술 회사 하리마 테크의 사장 가즈마사는 아내 가루히코와 이혼을 앞둔 상태다. 두 사람은 딸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명목상의 부부로 지낼 계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미즈호가 수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지게 된다. 담당 의사는 뇌손상으로 미즈호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판정하고, 두 부부는 장기기증을 결정하지만 뇌사 판정을 위한 검사를 앞두고 이를 번복한다.
이때부터 가루히코는 이혼도 포기하고 딸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다. 남편 회사의 기술과 과학을 동원해 삽관 없이 호흡을 유지하고, 기계 장치를 달아 근육을 움직이게 만든다. 뇌사에 빠진 딸을 마치 살아 있는 아이처럼 대한다. 그렇게 3년. 가루히코 주변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며, 그녀의 행동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과연 미즈호는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일까? 자기만족을 위한 광기 어린 행동일 뿐일까?
일본에서는 2000년 대 후반까지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에만 뇌사를 법적인 죽음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장기이식을 결정해야 검사를 통해 뇌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뇌의 기능이 정지해 다시 소생할 수 없는 경우라 해도 장기이식을 하지 않는 다면 법적으로 '뇌사' 판정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죽은 것인데 법적으로 죽지 않은 상태는 환자의 가족들의 선택을 어렵게 해 장기이식을 꺼리는 원인이었다. 게다가 15세 미만은 아예 장기이식이 불가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장기기증이 없어 해외에서 이식받거나 기증자를 기다리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였다.
소설이 출간된 2015년쯤에는 법이 개정되며 뇌사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장기이식의 연령 제한이 폐지된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작중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인 미즈호도 장기기증이 가능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장기기증은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법에서 뇌가 기능하지 않는 것을 죽음으로 인정하지만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가 컸기 때문이다. 또 이 작품 속에서처럼 현장에서 뇌사를 사망으로 확정하는 것에 소극적인 탓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어가 잠든 집>은 이러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뇌사자가 되어버린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과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아이의 에피소드, 장기기증을 통해 새 삶을 얻은 아이까지 하나의 큰 스토리로 엮어 독자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뇌사를 죽음으로 볼 수 있는가. 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등 다양한 물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사회 문제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얘기할 목적으로 스토리를 만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스토리의 완성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딸을 잃고 싶지 않은 엄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끝나 있다. 물론 결말에 이르러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끝나는 것과 정통 미스터리가 아니라는 점은 아쉽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언제나 그렇듯 다음 장을 서둘러 넘기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지는 스토리였다.
책을 다 읽고 검색해 발견한 30년 전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 다룬 내용을 마치 소설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신기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