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녹일 것처럼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의 유명 작가로 미스터리, 탐정물, 그리고 일본의 에도시대 배경의 괴담, 귀담을 소재로 한 에도 시리즈로 유명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이나 다작을 하는 작가로 일본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손꼽히는데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다작을 한다는 것과 종종 작품에서 일본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는 것, 그리고 많은 작품이 드라마 또는 영화화된 것으로 아주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미야베 미유키 쪽이 훨씬 유쾌하고 명랑하다는 것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도 <오사카 소년 탐정단> 같은 가벼운 명랑 소설을 쓰긴 하지만 장난끼가 넘쳐흐르다 못해 스스로 작품 속에 등장하진 않는다. 미야베 미유키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인 <마음을 녹일 것처럼>에는 무려 미야베 미유키 본인이 등장한다. 무명의 여류 추리소설가로.. 별 비중 없는 역할이긴 하지만...
단편으로 꾸며도 좋을 5편을 묶여 하나의 장편소설로 낸 <마음을 녹일 것처럼>의 주인공은 무려 개다. 일본인들은 일찍부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이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을 좋아하기도 했으니 개가 주인공이라고 이상할 것도 없지만 무려 추리를 하는 개. 탐정견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웠다.
주인공 마사는 셰퍼드 종으로 경찰견 출신으로 경찰견에서 은퇴한 뒤 우연찮게 하스미가에 입양되었다. 하스미가는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하스미 고이치로와 두 딸 가요코, 이토코가 살고 있었는데, 2층에는 가정집이 1층에는 작은 탐정사무소가 있어 마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탐정사무소에 방문한 고객들이 이야기나 사건을 엿듣고 사건을 추리하거나 탐정으로 활동 중인 하스미 가요코를 따라다니며 보낸다. 가끔은 밤늦게 집 밖으로 빠져나와 동네 개들과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단서를 수집하기도 하지만...
마사는 경험 많은 경찰견 출신답게 가요코보다 먼저 사건을 척척 추리해 낸다. 물론 마사는 개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누구에게도 스스로 추리한 내용을 전달할 방법은 없다. 마사가 애써 찾은 단서나 실마리를 인간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다. 간신히 어떤 것을 보고 짖거나 완력으로 가요코를 어떤 장소로 이끄는 것이 마사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다.
소설의 대부분 구성은 <마사가 발견한 단서> - <독자의 추리> - <가요코가 밝혀내는 사건의 전모> 형태로 구성되는데... 마사가 먼저 발견한 사건의 핵심이나 단서를 바탕으로 독자가 사건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 뒤.. 다시 가요코나 다른 인간의 서술을 통해 사건을 밝혀주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사건을 추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구성이다.
어떤 추리소설 작품의 경우 살인 사건이나 현장을 디테일하게 서술하며 불쾌감을 자아내는 반면, 이 작품의 경우에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지만 잔인한 묘사가 없는 것도 가볍게 읽기 좋고, 사건 하나하나 마다 마음에 와닿는 사연이 있는 등장인물이 있는 것도 여운이 있어 좋았다. 게다가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답게 동물학대 문제를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장편이지만 여러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읽거나 잠들기 전 챕터 하나 정도 읽으면 딱 좋다.